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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제 5 호 글구들이 모이는 곳, 자하 교지

  • 작성일 2023-09-05
  • 좋아요 Like 5
  • 조회수 13845
임지혁

정기자 임지혁 201710846@sangmyung.kr

 

  왜 우리는 글을 쓸까? 초고로 작성했던 두 원고에 X자를 긋고는 뚜껑을 뒤에 꽂아둔 파란색 만년필을 지긋이 바라보며 잠시 생각해 보았다. 

  자하교지는 자하골에 있는 어느 학교의 언론 기관이다. 매년 주제에 맞는 글구를 적어내고 그것들을 모아 편집하고 교정하면서 아담한 책 한 권을 내보이는 일을 하고 있다.  사실 시대에 맞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느릿느릿, 다른 사람이 작성한 원고들을 보면서 문장이나 심지어는 단어 단위로 참견을 하면서 모두가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글을 탈고하는 것이 우리들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결코 빠르지 않게 찬찬히 글에 대해서 생각하다가 다양한 주제들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이 정해지게 되고 곧 그것이 모여서 교지의 색을 이룬다. 

  교지가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학교에 대한 이야기, 세상만사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학술적이거나 문학적이고 심지어는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자하교지는 다룬다. 소속된 기자들이 탈고한 이야깃거리,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투고한 글로 인해서 교지는 더욱 다채로워진다. 학교라는 맥락 속에서 누군가가 생각해 낸 좋은 글, 혹은 작품은 무엇이든지 교지에 담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잡지보다는 먼 옛날 청기사[1]와 같은 연감과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2023년 7월에는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미야자키 하야오의 은퇴작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영화가 일본에서 개봉했다. 아직 한국에서 방영되지는 않았고 그 내용 또한 필자는 알지 못하지만 미야자키 감독은 “손자를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전한다.[2] 필자도 영화를 보기 위해 현해탄을 넘어볼까 고민도 했지만 현실적으로 그러지는 못한 채 포스터의 알 수 없는 새의 그림과 지긋이 적힌 제목만을 곱씹어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지금 내가 지금 적어가야 하는 글은 어떤 글이 되어야 할까? 그렇게 완성된 우리들의 연감은 어떤 모습이어야 우리 스스로 만족할 수 있을까?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요즈음이지만 우리들의 작은 연감을 우리들이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편찬하기 위해서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앞으로의 자하의 방향성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대들 어떻게 살 것인가’ 포스터. 사진=Studio Ghibli


 

  교지는 왜 글을 쓸까? 

  자하교지는 우리 학교의 언론 기관이다. 그래서 언론 기관이라는 단어의 정의와 같이, 세상의 여러 일들에 대한 정보를 취재하며 그것에 자신의 의견을 첨가해 독자에게 기사를 선보이는 일을 하고는 한다. 그렇기에 교지가 글을 쓰는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 위해서는 언론에서 글을 쓰는 사람, 즉 기자라는 직업에 대해서 우선 궁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세기 초의 먼 옛날에는 글을 좀 쓴다고 하는 사람들이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고는 했다. 시로 유명하면서 의열단 소속이었던 이육사. 최초의 근대 장편 소설을 쓴 친일파 이광수. 남조선로동당의 핵심 인물이던 박헌영. 친일과 독립, 좌우를 막론하고 그 시절에 글을 쓰는 사람들은 기자가 되었다. 그 즈음에 역사가 시작된 우리 학교에서도 그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아마도 글재주를 가지고 있던 선배들이 언론사에 들어와서 학보에서, 교지에서 각자 자신의 글을 적어나가며 여러 기록을 쌓아가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자하 교지의 기자라는 직책에 대해서 살짝 첨언하자면 우리 기자들은 시대의 사관을 표방하기도 한다. 한 해의 개인적인 이야기들부터 공적인 이야기들까지, 어느 순간순간을 이루는 여러 이야기들을 싣는 것 또한 그 목표로 두고 있다. 가령 지난 2016년에 있던 박근혜 대통령 탄핵 당시에 시국선언문을 발표한 것은 시국에 대한 자하의 입장을 밝히는 것 또한 목표에 있었지만, 동시에 학교 구성원들과 자하 구성원들의 시국에 대한 의견을 역사에 기록하는 것 또한 주된 목적 가운데 하나였다. 

  글을 좀 쓴다고 하는 시대의 사관들, 아무래도 그것이 교지나 더 나아가서는 언론사와 기자들이 받을 수 있는 최대한의 칭찬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글재주를 가지고는 당대 학생운동, 각종 창작물, 학술논문 등 다양한 주제를 망라하고 다듬어서 교지 한 권에 담아내던 우리들의 선배들은 필자가 존경하고 동경하는 그 대상이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그런 기대와는 다르게 작금의 기자라는 직업의 권위는 가히 매우 낮다고 표현해야만 하겠다. 2023년 연초에 한겨레의 편집국 간부는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의혹의 중심에 있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와 2019~2021년경 9억 원 규모의 비정상적인 금전 거래를 진행한 것으로 드러났다.[3] 조회수를 높이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을 선정하거나 충분한 취재를 진행하지 않고 기사를 작성하는 경우, 私적이거나 社적인 의도를 지니고 기사를 작성하는 등 언론 윤리에 부합하지 않게 기사를 작성하는 일들은 특별히 언급하기도 애매할 정도로 일상적이다. 

  우리들은 그 문제들로부터 자유로울까? 물론 자하 교지, 나아가서 교내 언론사들이 화천대유나 여러 부적절한 비리 사건과 연계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만일 우리 교내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에 접속해서 그 첫 화면을 보았을 때, 근래의 주요 언론사들의 홈페이지와 같이 자극적이고 사적 감정이 담긴 기사들로 가득 찼다면 그것은 언론이 지향했던, 그리고 지향해야 할 방향성은 아닐 것이다. 혹은 그것이 학교의 홍보 페이지와 다를 바가 없다면 우리 언론이 존재해야 할 필요성을 지우는 일일 것이다. 그런 맥락에서 우리들은 오늘날 기울어 가는 기자라는 직업의 권위, 그 현상에서 전혀 자유롭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가령 교내 구성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들을 들어볼 수 있을 독자 투고는 그 비중이 줄어들었고, 교내 정책에 대해 언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기사들도 역시 줄어들고 있다

 

  모든 것들은 그 자신의 대가를 치룬다. 언론은 그 자신의 신뢰를 깎으며 그 자신의 대가를 치루고 있다.

  이 현황 속에서 교지가 나아가야 할 방향성은 어떤 것이어야 할까? 지난 2022년 겨울 동계 교내 언론 세미나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의가 있었다. 하지 못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해낸 것. 일일히 상세하게 언급하기 어려울 많은 논의들이 있었고 지금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면 ‘하지 못하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일들에 더해서 우리들 스스로에 대해서 생각해보기로 결정했다. 학교에 대해서, 교지에 대해서.

  우리들 스스로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는 이번의 기획 기사가, 더 나아가서 우리들이 내놓은 방향성이 담길 2023년의 자하가 그 해답의 이정표를 제시하는 것이기를 소망한다. 그렇게 자하교지가 글구들이 모일 곳이 되기를 소망한다.






[1] 20세기 초 중부 유럽 일대의 예술가들이 발간한 표현주의 예술 연감. 화가 바실리 칸단스키가 주축이 되었다.

[2] 이종길. “미야자키 하야오 10년 만에 신작 “손자를 위해”” 「한겨레」 2022년 12월 13일. https://www.asiae.co.kr/article/2022121322424671356

[3] 한겨레신문사. ” 독자 여러분께 깊이 사과드립니다「한겨레」 2023 01 06.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1074728.html